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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창작(습작)

창작) 노인

* 창작 스터디 2주차 - 주제: 병

 

 

 

 

 

"할머니~ 오늘은 기분이 어떠셔요?"

 

적막함과 나른함이 가득한 병실. 문이 열리고 쾌활한 목소리의 여성이 들어오자 마치 햇살이 병실 전체를 비춰 환해진 듯한 착각이 든다. 벌써 오십 줄을 넘긴 여성. 그러나 얼굴 가득 담긴 미소 덕분인지 삼십대갖기도,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이십대같은 상큼함마저 느껴진다.  

"아아.. 오늘도.. 오셨네.. 이리 앉아.. 날도 추운데 어째 이리 일찍 오셨어.. "

 

백발의 노인은 침대 켠의 이불을 정리하며 부산을 떤다. 느릿느릿 하지만 퍽이나 다정한 말투. 오랜 기간 방문해 듯한 간병인을 맞이하는 노인의 표정에는 반가움이, 그리고 묘한 설렘까지 보인다. 노인의 곁에서 혈압이며 이것 저것 체크하던 간호사도 여성을 바라보더니 밝게 웃는다.  

 

" 미연씨 오셨어요? 할머니가 얼마나 기다리셨는지 몰라. 어제부터 계속 미연씨 언제 오냐고 그렇게 물어보셨어." 

"안녕하세요 선생님~ 같이 계셨네요. 어제 일이 워낙 바빠서 말이에요. 수가 없어서.. 할머니 많이 기다리셨어요?"

".. 아니야.. 기다렸어.. 계속.. 잠만 잤는걸.. "

"아이고 할머니 계속 물어보셨으면서 괜히 그러신다."

"아하하 할머니 많이 보고 싶으셨나 봐요. 죄송해서 어떡하나. 오늘은 그럼 오래 있다가 갈게요."

 

조용함으로 가라앉아 있던 병실이 웃음과 활기로 가득 찬다. 미연이라고 불린 여성은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요양원을 찾아와 할머니의 병수발을 드는 사회복지사. 처음에는 낯을 가리며 미연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던 노인도 여성의 지극 정성에 점차 마음을 열었고, 이제는 그녀가 언제쯤 방문하는지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할머니, 책이라도 읽어 드릴까요?" 

"그래.. 선반에 책이 하나 있더라… 그거 읽어줘…"

"음..  이거 저번에도 읽어드렸는데. 읽어드릴까요?  새것도 가져왔는데."

".. 아냐.. 저걸로.. 읽어줘.. 까먹었나봐. 기억이 안나.."

"그래요 할머니. 여기 앉아서 읽어드릴게요." 

 

미연은 노인의 세워진 침대 옆에 자리를 잡고 선반에서 꺼낸 작은 그림책을 꺼내 든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듯한 . 그러나 책의 앞부분부터 중간까지는 이미 손때가 묻어 너덜너덜 하다. 미연은 잠시 노인을 지긋이 바라보고 책을 조용히 읽어 내려가기 시작한다. 침대에 편히 몸을 기대고 눈을 지긋이 감은 미연의 목소리를 듣던 노인은 자신의 손을 멍하니 내려다 보더니 미연의 손을 잡는다.  

 

"아가씨. 여기 내가 손에 뭐라고 써뒀는데.. 이게 뭔지 기억이 나네." 

"손이요? 보여주세요. 제가 봐드릴게요."

 

노인의 손에는 펜으로 비뚤비뚤 써놓은 글씨가 적혀있다. 손의 때문에 글씨가 번져 알아볼 수는 없었으나, '서랍' 이라고 적힌 글씨는 확인할 있었다. 

 

"서랍이라고 적혀있네요. 할머니가 서랍에 두셨나 봐요." 

 

할머니 덕분에 제가 나이에 아가씨 소리를 듣네요. 미연은 웃음 섞인 중얼거림과 함께 서랍을 연다. 서랍을 여니 작은 액자와 종이로 꼬깃꼬깃 싸둔 작은 뭉치가 보인다. 미연은 조심스럽게 그것들을 꺼내 노인의 손에 건낸다.  

 

"아… 사진이 어디 갔나 했더니 여기 있었구나.. 아가씨 이것 . 딸이라우." 

"할머니 저번엔 사진 누군지 모른다고 하셨는데, 이제 기억 나시나 봐요! 따님이었구나?"

"내가 그랬어? 으응.. 아냐. 딸을 어떻게 잊겠어… 하나밖에 없는 귀한 자식이라오."

 

이게 언제적 사진이더라.. 노인은 사진 속에서 밝게 웃는 젊은 여인을 소중한 연신 손으로 쓸어 내린다. 그래. 딸이야. 이쁘지? 사진이 거기 들어가있었을까. 계속 찾았는데. 대학 졸업 때 찍은 사진이야. 졸업하는 날에 내가 직접 찍어줬어. 다른 건 다 잊어도 그건 잊어버릴 수가 없지. 마냥 아기같던 것이 벌써 대학 졸업을 다 했다오. 그러고 보면 아가씨, 딸이랑 닮았어. 눈도 그렇고, 특히 웃을 딸이랑 닮았다오. 그래서 아가씨가 그렇게 정이 드나 .  

아가같기만 것이 이만큼이나 컸소. 퍽이나 그립다는 사진을 바라보는 노인을 미연은 조용히 바라본다. 미연의 얼굴에 살짝 어린 미소는 기쁜 듯한, 그러면서도 쓸쓸한 듯한 그런 미소.  

 

"할머니, 그런데 종이뭉치는 뭐에요?"

"종이? 아 맞아.. 아가씨 주려고 그런 거야. 자꾸 깜빡깜빡 해서 서랍에 넣어놓고 손에 적어뒀는데, 이것도 까먹을 했지 뭐요. 잊어버리기 전에 받아둬."

 

저를요? 미연은 종이뭉치를 받아 들고 조심스럽게 종이를 펼친다. 속에는 오래 잔뜩 흡집이 나있는 금반지가 들어 있다.  

 

"할머니, 이거 할머니 결혼반지 아니에요? 이걸 저를 주려고 하세요.." 

"아가씨가 매일 이렇게 와서 책도 읽어주고… 하도 이뻐서 그래. 그런데 내가 가진 하나도 없잖수. 뭐라도 주고 싶은데, 줄게 그것밖에 없어. 받아둬.."

"아이구. 그래도 이걸 제가 어떻게 받아요. 할머니 갖고 계세요. 저는 아무것도 안 해주셔도 돼요."

제가 좋아서 오는 건데요. 아냐 받아둬 내가 편하질 않아서 그래. 아주 잠깐 동안 반지를 받으라는 노인과 그럴 없다는 여인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러나 이내 여인의 패배 선언으로 실랑이는 금방 종료됐다. 어딘가 마음이 복잡해 보이는 여인과는 달리 노인은 함박웃음.

 

"그래. 받아둬.. 사람이 그거 가져봤자 뭐하겠어. 아가씨가 받아뒀다가 예쁘게 쓰고 그래." 

".. 그런 말씀 마셔요.."

"아까 읽던 마저 읽어줘. 뒷얘기가 듣고 싶어."

 

노인은 다시 자세를 편히 하고 눈을 감는다. 손에는 액자를 채로. 미연이 하는 말에 집중하려는 숨소리도 조심스럽게 내면서.  

미연은 노인이 건낸 반지를 조용히 바라보더니 다시 종이에 소중하게 감싸 주머니에 넣는다. 다시 앞부분이 손때로 까맣게 물든 책을 꺼내 들고 다정한 목소리로 읽어 내려간다.

 

 

 

 

 

"할머니 잠드셨나요?" 

". 잠드셔서 이불 덮어드리고 나왔어요. 항상 중간부분 읽을 쯤이면 잠드시네요."

"다행이야. 미연씨 와서 그런가 봐. 요즘 잠을 못 주무셨거든."

걱정 됐는데 다행이네. 간호사는 한숨을 쉬며 팔짱을 낀다. 병실 . 차가운 복도에서 간호사와 미연의 대화가 조용히 오고 간다.

 

"요즘 건강은 어떠셔요?" 

"그게, 별로 좋아. 수록 상태가 나쁘셔서.. 어제는 많이 아프셨어. 오늘은 다행히 괜찮아 보이지만, 아무래도 준비를 해야 같아."

 

그렇군요.. 미연은 고개를 숙이고 주머니에 손을 넣어 꼬깃꼬깃한 종이뭉치와 속에 있는 반지를 가만히 어루만진다.  

 

 

준비를 한다. 굳이 이야기 하지 않아도 미연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이 점점 기억과 함께 기력도 함께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자신이 와있을 때에는 아무렇지 않은 건강해 보여도, 병실 너머까지 들리는 기침소리는 노인이 세상을 등지고 훨훨 날아가려는 날갯짓소리 같았다는 것을.  

그러나 무엇을 준비하라는 것인지 미연은 수가 없었다. 마음의 준비? 그것이 준비를 한다고 있는 것이었던가. 노인이 어느 결국 세상을 등지고 날아갔을 , 미연의 가슴 켠에는 무엇이 남을까. 짐작조차 없었다.  

 

 

 

 

연말. 사회복지사인 그녀에게도 너무나 바쁘고 정신 없는 기간. 최대한 노인을 찾아가겠노라 마음먹었음에도 어쩔 없이 병실을 찾아가지 못하는 날이 늘어갔다. 그때마다 초조해진다. 옆에 있어드려야 하는데. 내가 있어야 하는데. 바쁘게 일을 처리하고, 없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노인을 찾아간다. 하루가 지날 수록 야위어 가는 노인. 그런 노인을 보며 점점 초조해지는 자신을 들키지 않으려 미연은 밝게 웃으며 병실의 문을 열곤 했다.  

 

 

 

 

 

그리고, 마침내 날이 찾아왔다. 

"미연씨, 얼른 와줘! 할머님이 위독하셔."

간호사의 다급한 전화. 노인이 드디어 세상을 떠나 날아오르려 한다는.

 

급히 차를 몰아 노인을 찾아가는 길은, 이상하리만큼 침착했다. 손에서는 땀이 줄줄 나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지나치게 차분하다. , 그래. 이것이 준비인걸까? 

 

 

 

"편히 가셨나요?" 

"그래. 그렇게 괴로워하시더니, 마지막 순간엔 편히 가셨어."

"그래요.. 뭔가 하신 말은 없으셨어요?"

"글쎄.. 그냥 사진을 계속 쥐고 계시더라고. 액자에 담겨있던 사진 말이야."

 

미연씨가 갖고 있어. 이건 미연씨가 가져가야지. 간호사는 밝게 웃는 여인이 있는 액자를 조심스럽게 미연에게 건낸다. 오래된 사진 속에 젊음을 빛내며 웃고 있는, 미연을 닮은 여인. 미연은 조용히 액자에서 사진을 꺼낸다. 

 

"끝내 기억하지 못하셨어요." 

"그런 소리 말아. 그래도 마지막까지 가장 보고 싶어 하셨는걸."

 

조용히 눈물짓는 미연을 간호사가 조심스럽게 안아준다. 견뎠어. 당신 같은 딸은 적이 없어. 미연씨 덕분에 좋은 곳에 편히 가셨을 꺼야.  

 

 

 

이제 아무도 없는 조용한 병실. 미연은 지나치게 소박한 노인의 자리를 정리한다. 결국 끝까지 읽지 못했던 그림책. 매일 병실을 찾아올 때마다 노인은 그림책을 읽어달라 말했고, 중간쯤 읽었을 때엔 잠이 들곤 했다. 매일같이 읽어도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며 미연의 손에 쥐어주던 그림책.  

 

"옛날엔 엄마가 나한테 읽어줬었죠? 그때마다 나도 결국 끝까지 듣지도 못하고 잠들었던 같아." 

미연은 조심스럽게, 아주 그립다는 손길로 침대를 쓰다듬는다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 사진 속 여인은, 어느 새 자신의 사진을 찍어주던 어머니의 나이가 되어, 먼저 가버린 어머니의 빈 자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잘가요 엄마. 곳에선 기억해줘야 해 

  

 

 

 

 

 

 

 

"베타 아밀로이드" 독성 물질이 쌓여 하루 수백만 개의 세포가 사라지는 치매

기억을 잃지만, 대신 파편처럼 남는 과거의 기억들.

치매 노인들은 과거와 현재, 어느 중간쯤을 살아간다 

- 지식채널e 치매, 기억을 잃다 중 

 

 

 

2013년 12월 25일 이글루스에서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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