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스터디 3주차 - 주제: 편지
XXXX 년 X월 X일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께
어머니, 오늘도 평안하십니까? 늘 당신 곁에 있던 아들이 사라져 혹여 밤잠을 설치시진 않았는지 염려스럽습니다.
저는 이 낯선 환경에서 이제 막 적응해나가고 있습니다. 늘 고요한 자연을 벗삼아 살던 저에게 새로운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매일을 보내는 것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매우 힘든 일입니다.
이 곳에서는 모두가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밥을 먹으며 같은 시간에 잠이 듭니다. 모두가 같은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누가 누구인지, 심지어 나는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분명 모두가 다른 모습으로 다른 생각을 하며 다르게 살아왔을 터인데, 지금은 그저 모두가 똑같이 생긴 병정인형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신기하고, 또 이상한 일입니다.
이 곳에서는 모두가 우울하고 한편으로는 겁에 질린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그러하겠지요. 다만 다른 것은 그들의 공포가 전쟁과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함으로부터 온 것이라면, 저는 그저 이 낯선 상황 자체에 대한 공포에 떨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실 우리 동네에서는 총 포탄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으니까요. 이 곳에 와서도 제가 전쟁을 위해 왔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습니다.
요 며칠 쉽게 잠이 들지 못했습니다. 낯선 이 곳에 대한 불안으로 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저를 걱정하느라 밤잠을 설치실 어머니가 걱정이 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부디 제 걱정은 하지 마시고 당신의 건강을 먼저 챙기시길 바랍니다. 다시 돌아갔을 때 어머니의 몸이 예전 같지 않다면 이 불효자식의 죄가 또 하나 느는 것이 아닙니까.
매일 자연을 벗삼아 시나 소설을 써가며 글쟁이가 되기를 꿈꿔왔던 저입니다. 글이 아니라 몸을 써야 하는 곳에 와 정신은 없으나, 이 곳에서의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사람들이 모두 저의 밑거름이 되겠지요. 그렇게 생각하며 잠을 청해보려 합니다.
부디 몸 건강히 계십시오. 조만간 다시 어머니께 안부를 전할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당신의 하나뿐인 아들로부터
XXXX년 X월 X일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께
어머니,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도무지 당신께 안부를 전할 여유가 나질 않았다는 변명으로 편지를 먼저 시작하려 합니다. 아들 걱정에 얼마나 마음을 쓰셨습니까. 어머니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에 항상 마음이 편치 못합니다.
저는 매일을 불안에 떨며 지내고 있습니다. 동네에서는 한 번도 들을 수 없었던 총 포탄 소리가, 이제는 새의 지저귐보다 더 빈번하게 들립니다. 이제는 그 포탄의 소리가 진짜 들리는 것인지 아니면 환청을 듣는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저의 귀는 항상 시끄럽습니다. 얼마 전 아주 가까운 곳에서 포탄이 떨어졌을 때, 그제서야 비로소 고요함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눈 앞의 상황도, 머릿속도 혼란으로 가득 차 시끄러운 마당에 귀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은 채 고요하더군요. 참으로 웃긴 일이 아닙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치 귀를 막고 있던 보이지 않는 막이 찢어지듯 다시 엄청난 소음에 휩싸였으나, 그 이후 고요함이 얼마나 큰 공포를 가져오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곳은 소음도, 고요함도 모두 두려운 곳입니다.
하루 빨리 어머니 곁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이 전쟁은 언제쯤 끝이 나게 될까요?
어머니가 계신 곳에는 그저 바람소리와 새의 지저귐 소리와 아이들이 즐거이 뛰노는 소리만 가득하길 바랍니다.
당신의 하나뿐인 아들로부터
XXXX년 X월 X일
어머니께
어머니, 평안하십니까? 당신께 편지를 보내는 이 순간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못난 아들입니다. 항상 나약한 소리만 하는 것 같아 편지를 하기 항상 주저하였으나, 어머니께라도 이야기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아 오늘도 이렇게 저의 나약함이 가득한 편지를 보냅니다.
어제는 이곳에 온 후 가장 친하게 지냈던 벗이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향에 대해 이야기하며 돌아가게 되거든 함께 술잔을 기울이자고 약속하던 벗이었습니다. 이곳에 온 이후로 수많은 죽음을 보아왔으나 이 벗의 죽음은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눈을 감으면 자꾸만 그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이곳에 온 이들은 분명 저마다 다른 꿈을 꾸며, 막연한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으며 살아왔을 겁니다. 한적한 시골에서 매일 글을 쓰던 저와 다를 것 없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왜 이렇게 하루아침에 죽음으로 내몰려야 하는 걸까요?
그러나 벗을 죽음으로 몰아갔던, 매일을 공포에 떨게 만드는 적에 대해서 그 어떤 분노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상하게도 그들에게 제가 느끼는 감정은 분노나 두려움이 아닌 동정과 연민입니다. 그들 역시 이전까지는 저마다의 꿈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었을 테니까요. 그저 제가 분노하는 것은 이런 비극을 만들어낸 전쟁이라는 상황뿐입니다.
어서 돌아가고 싶습니다. 하루하루 미쳐가는 것 같습니다. 저 자신을 잃고 있는 기분입니다.
당신의 아들로부터
XXXX년 X월 X일
어머니! 기어코 당신의 아들이 죄인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손이 떨려 글씨가 제대로 써지질 않습니다.
그 동안 그저 피하고 숨기만 했던 제가, 기어코 사람을 죽이고야 말았습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그저 제가 살기 위해 다른 이를 죽였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요. 벌레 한 마리 제대로 죽이지도 못했던 제가 단지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생각으로 누군가를 죽였습니다. 사람을 말이죠.
어머니 곁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돌아가도 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곳에서는 사람을 많이 죽일 수록 영웅 대접을 받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저 살인자가 된 기분입니다.
더 무서운 것은, 사람을 죽인 제 자신이 두려운 한편, 별것 아니었다는 생각을 한 순간 하게 된 저를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아들은 변했습니다. 이것이 소름 끼치도록 두렵고 싫습니다.
아들로부터
XXXX년 X월 X일
(심하게 떨며 쓴 듯한 글씨와 번진 잉크로 인해 글의 내용을 식별할 수 없다.
번진 글자들 사이로 어머니, 두렵다, 살려 등의 단어만 간신히 찾을 수 있을 뿐이다.)
조용하고 한적한 산골 마을에 낯선 장정 네 명이 들어선다. 전쟁으로 젊은 남성들이 모조리 끌려가고 이제는 아이와 아낙네와 노인들만 남은 이 마을에 들어온 낯선 남성들은 작은 마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바닥에 돌로 긁적거리며 땅따먹기를 하던 아이들은 두려움과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남성들을 쫓아갔고, 밭 일을 하던 아낙네들은 일손을 멈추고 그들을 지켜보았다. 칼같이 맞는 발걸음과 딱딱해 보이는 인상, 비록 낡고 헤졌으나 위압감을 풍기는 군복을 입은 그들을 보고서야 이들이 군인임을 알 수 있었다. 전쟁에 아들을 보낸 어머니들은 뛰쳐나와 그들에게 아들의 소식을 물었으나, 그들은 대답하지 않은 채 그저 한 집의 주소를 물을 뿐이다. 이 아무개의 집이 어딥니까? 저 위로 쭉 올라가면 되오.
낯선 이에 대한 호기심, 아들의 안부를 알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들뜬 마을 사람들은 이내 그들이 짊어지고 온 것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그저 그들이 향하는 길을 눈길로 쫓을 뿐이다.
"계십니까?"
"예에. 누구신지요?"
"이곳이 이 아무개의 집 맞습니까?"
"네. 제가 애미 되는 사람입니다. 왜 그러시나요? 아들이 돌아왔습니까?"
마루에서 불안한 듯 낯선 손님을 바라보며 대답하던 여인은, 아들의 이름이 나오자 허겁지겁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한 채 달려나간다. 아들은 잘 있나요? 통 소식을 들을 수가 없군요. 전쟁이 끝났으니 이제 돌아오겠지요?
남성들은 아무 말 없이 그들이 짊어지고 올라왔던 짐을 마당에 내려놓았다. 짚단으로 덮힌, 성인 남성 크기만한 것이 들것에 실린 채 마당에 내려놓아지는 것을 보고 여인은 그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남성들을 바라볼 뿐이다.
"이 아무개의 사망으로 시신과 유품을 수습하여 유족에게 전달하고자 왔습니다. 유품 내용을 확인해주십시오."
여인의 떨리는 손 위로 몇 가지의 물건이 올려진다. 낡은 사진 하나, 그리고 봉투에 정갈하게 담긴 편지 다섯 통.
여인은 쓰러지듯 남성들이 가지고 온 들것 위로 고꾸라지더니 집단을 휙 열어젖힌다. 머리에 구멍이 뻥 뚫린 채, 눈을 희번득하게 뜨고 싸늘하게 누워있는 아들. 여인에게 매일 자신이 쓴 시며 소설을 읽어주던 그의 아들. 미처 언어가 되지 못한, 알아들을 수 없는 꺽꺽 대는 소리만 내뱉으며 가슴을 친다. 아가 왜 이러고 있느냐. 왜 이렇게 차갑니. 어서 일어나서 애미를 안아주렴
"이 아무개의 시신 발견 당시 머리의 총상 외에는 어떠한 사인을 발견하지 못했으며, 손에 권총 한 자루를 쥐고 있던 것을 발견했습니다. 시신에서 나온 총알은 해당 권총에서 발사된 것으로 확인되어 사인은 자살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시신과 유품의 전달이 모두 끝났으니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무미건조하게, 마치 대본의 대사를 읽듯 말을 내뱉고 돌아서는 남성들의 등 뒤로, 칼로 찢는 듯한 여인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포성보다도 날카로운 비명과 울부짖음이 마을에 내려앉은 안개 같은 적막함을 꽤 뚫었다.
2014년 1월 10일 이글루스에서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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